top of page
Search

사사기 (2) 설교요약


사사기에서 계속 반복되는 어떤 패턴이 있습니다.

타락 고난 구원 타락 입니다.

여호수아 3장 7절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 목전에 악을 행하여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를 섬긴지라.

그 결과로 8절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그들을 메소포타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파셨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8년을 섬겼더니

9절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그는 곧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라.

첫 번째 사사 옷니엘입니다.

10절) 여호와의 신이 그에게 임하셨으므로 그가.이스라엘 사사가 되어 나가서 싸울 때에 여호와께서 메소포타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을 이기니라.

그 결과 11절 그 땅이 태평한지 40년에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 죽었더라.

이제 이이야기가 반복 됩니다.

두 번째 사사가 3장 12절의 에훗 세 번째 사사가 3장 31절의 삼갈 네 번째 사사가 4장에 나오는 여자 사사 드보라입니다. 다 섯번째 사사가 6장의 기드온입니다 여섯 번째 사사는 10장의 돌라입니다. 일곱 번째 사사는 10장3절의 야일입니다. 여덟 번째 사사는 10장 6절의 입다입니다. 아홉 번째 사사는 12장 8절의 입산입니다. 열 번째 사사는 12장 11절의 엘론입니다. 열한 번째 사사는 12장 13절의 압돈입니다. 열두 번째 사사는 13장의 삼손입니다.

사사기 13장부터 16장까지 길게 언급되는 12번째 사사 삼손이야기는 이전의 이스라엘지도자인 모세와 여호수아의 모습과는 다른 이스라엘 지도자의 모습입니다.

이방 여인인 들릴라와 사랑에 빠진 모습과 나실인의 모습을 상실한 삼손의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에 지붕을 유지하는 두 개의 기둥을 무너뜨리면서 많은 블레셋 원수들과 함께 죽는 클라이막스 이야기는 자칫 핵심을 놓치게 하기도 합니다.

두 눈이 뽑힌 채 블레셋 사람들과 죽는 삼손의 모습은 이 전의 이스라엘 지도자인 모세와 여호수아와는 다른 모습입니다. 이스라엘의 타락이라는 큰 틀에서 사사기를 읽어야 합니다.

이 흐름이 사사기 마지막 부분에서 다시 확인 됩니다.사사기를 끝까지 읽어보면 사사들의 이야기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마지막 12번째 사사로 언급되는 삼손이야기가 끝나면서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사사기 17장에서 미가에 대한 이야기와 아직까지 가나안 땅을 분배받지 못하고 있는 단 지파가 땅을 차지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리고 사사기 19장부터 마지막 21장까지의 내용은 이스라엘 연합군과 베냐민지파 사이의 내전이야기입니다.

사사기에서 사사들과 관계가 없는 이야기들이 마지막 5장에 걸쳐 기록되어 있는데 여기에 대한 해석이 분분합니다.

이것을 바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구약성경 안에서 발견되는 두 가지 중요한 흐름인 인간의 타락 그리고 구원에 주목해야합니다.

한 쪽은 인간의 타락이고 또 다른 한쪽은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이 흐름을 적용해본다면 미가 이야기도 이스라엘의 타락이야기입니다. 신앙심은 있었지만 십계명에 분명히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였는데 사사기17장 4절을 보면 신상을 만듭니다. Gave them to a silversmith, who used them to make the Idol. 그리고 3절에 The Lord bless you, my son이라고 하였고 consecrated my silver to the Lord라고 하면서 표현되는 당시 이스라엘의 신앙 수준입니다.

이 두 가지 표현이 상징하고 있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 신앙과 신상이라는 이방나라 문화가 결합되어 혼합주의 신앙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지금도 이런 혼합주의 신앙이 발견됩니다. 성경을 인본주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작금의 시대정신이 되어 버린 이성과 과학의 틀로 성경을 해석합니다.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아 기존의 전통적 신앙고백의 틀인 only Jesus를 부정하고 only라는 단어를 빼고는 선한 양심만으로도 천국갈 수 있고 심지어는 다른 종교의 길로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주장도 합니다.

주장은 그럴듯합니다. 서로간의 종교적 갈등을 없애면서 평화를 추구하고 나만 맞다고 주장하는 배타적인 편협성에서 벗어나 모두가 공존하는 그럴 듯한 주장이지만

이런 혼합주의 신앙의 영향을 받는 그 순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부인되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혼합주의는 세속주의와 교회와의 타협입니다. 세상의 축복이 우리 신앙 안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기복신앙입니다. 교회가 창조주 하나님과 풍요로움을 보장해 준다는 가나안 신 바알을 동시에 함께 숭배하는 것입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갑니다. 혼합주의 신앙 이야기 뒤에 나오는 사사기 19장 이야기는 베냐민 지파의 타락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 중간 중간에 매우 중요한 말씀이 반복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사기 17장 6절, 18장 1절, 19장1절, 21장25절에 반복하여 나옵니다.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였더라.

성경을 읽다가 문맥과 맞지 않는 이야기가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것은 대부분 본문 해석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사사기 맨 마지막장 마지막 절에 다시 나오는 이 표현은 바로 에덴동산의 선악과 나무 이야기와 바벨탑 이야기의 반복입니다.

이 표현이 사사기에서 같은 의미가 다르게 표현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 것이 사사기의 핵심내용입니다.

하나님이 왕으로 표현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따라 살아야하는데 자기 마음대로 산다는 것입니다.

선악과 나무의 핵심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에덴동산에서 살 수 있는 조건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다는 것은 선악과 나무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면서 산다는 것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이 것이 구약에서 사용되는 왕의 개념과 같이 사용되는 왕의 통치 개념입니다. 말씀을 지키는 행동을 왕의 통치를 받는 행동과 같은 것입니다.

이 의미를 더 깊이 밝혀 주는 것이 바벨탑사건입니다. 하늘까지 이르려는 바벨탑은 단지 높게 쌓으려는 sky까지 올라가려는 인간의 능력만을 과시하려는 것이 아니라 heaven 즉 하나님이 계시는 곳까지 이르려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과 같은 존재가 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의존하지.않는 독립적인 존재가 되어 스스로 판단하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입니디.

이 모든 내용의 핵삼은 인간이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행동하는 독립적인 존재가 되려는 것입니다. 누구의 통치를 받으려고 하지 않은 독립적인 존재가 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의존하는 존재가 되는 것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이 표현이 바로 사사기의 왕이 없으므로의 표현입니다. 왕이신 하나님의 통치를 받지 않는다는 표현입니다. 그래서 자기 마음대로 산다는 표현입니다.

이것이 사사기 기록의 목적입니다.

이제 이렇게 사사기가 끝나지만 여기에는 또 다른 복선이 숨어 있습니다.

'왕이 없으므로'라는 표현이 주는 복선은 왕이라는 단어가 하나님이어야 하는데 이제 인간이 왕이 되는 이야기와 그렇지만 왕이신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는 예고편인 것입니다.

앞으로 왕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왕이신 하나님 vs 인간 왕들의 이야기 vs 왕이신 예수님의 모형인 다윗왕. 이것은 사무엘서와 열왕기서를 이해하는데 핵심이며 또한 성경의 매우 중요한 흐름이기도 합니다.

이 것은 다음 주부터 시작되는 사무엘서와 열왕기서 설교에서 알아보겠습니다


 
 
 

תגובות


About Me

20220227_150950_edited.jpg

런던 풀럼 우리 교회는

Fulham Broadway station (디스트릭 라인 2존) 바로 옆에 위치한 한인 교회입니다.

하나님 중심과 말씀 중심의 교회입니다.

매주 주일 오후 2시에 예배를 드리며 예배 후에는 식사를 하며

교제를 나누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디자인 한 교회'에 문을 두드리시를 바랍니다.

#LeapofFaith

Posts Archive

Keep Your Friends
Close & My Posts Closer.

Thanks for submitting!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