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서 (2) 설교요약
- 런던 풀럼 우리 한인교회
- Oct 13,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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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Oct 21, 2023

사무엘서의 주인공은 사무엘, 사울 그리고 다윗입니다. 그리고 이 세 명의 주인공들이 등장하여 왕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먼저, 인간이 왕이 되어 다스리는 이스라엘 왕 제도에 대해 하나님은 부정적으로 생각하십니다. 사무엘 상12장 19절, 우리가 우리의 모든 죄에 왕을 구하는 악을 더하였나이다. 정리하자면 인간 왕을 구하는 것은 여호와 앞에 큰 죄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 생각해야 할 것은 이것이 왜 하나님 앞에서 악이 되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부정적으로 생각하실까요? 사무엘상12장 12절을 보면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너희의 왕이 되실찌라도 너희가 내게 이르기를 아니라 우리를 다스릴 왕이 있어야 하겠다 하였도다. 지금까지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다스리는 신정국가체제였는데 그 왕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인간이 왕이 되어 다스리는 그런 왕권국가가 되었기 때문에 이 제도는 잘못된 것이며 죄라는 것입니다. 오늘은 신정국가에서 왕권국가로 전환되는 과정을 살펴보면서 이것과 연결된 어떤 새로운 변화를 찾아보겠습니다. 지금까지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직접 역사 안에 들어오셔서 행동하셨습니다. 애굽에서 10가지 재앙으로 애굽의 신들을 혼내셨으며 홍해의 바닷길을 가르시는 하나님의 구원행동을 출애굽1세대는 직접 목격했으며 출애굽 2세들은 요단강이 갈라지고 가나안 전쟁의 첫 관문인 여리고 성이 고함만 쳐도 하나님께서 무너뜨리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가나안 정복전쟁을 여호와의 전쟁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흐름에서 중요한 사건이 발생합니다. 법궤를 빼앗기는 사건입니다. 사무엘상 4장입니다. 이스라엘과 블레셋 사이에 전쟁이 벌어지는데 4:2절, 이스라엘 군사가 4000명이나 죽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쟁에서 패한 이유를 찾습니다. 4:3, 백성이 진으로 돌아오매 이스라엘 장로들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로 오늘 블레셋 사람 앞에서 패하게 하셨는고? 그리고 결론을 내립니다. 여호와의 언약궤를 그 원인으로 생각합니다. 왜 이런 생각을 했을까요? 지금까지 경험한 것은 법궤를 앞세우고 요단강을 건너자 요단강이 갈라지는 것을 경험하였고 법궤를 앞세우고 여리고성을 돌면서 소리를 지르자 여리고성이 무너진 것을 경험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법궤의 힘과 능력을 사용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4:3, 당시 실로에 있던 여호와의 언약궤를 가져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법궤를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고 합니다. 4:4 이에 백성이 실로에 보내어 그룹 사이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의언약궤를 거기서 가져왔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언약궤와 함께 거기 있었더라. (홉니와 비스하스의 이름이 여기 기록된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4:5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대가 매우 컸습니다. 그 분위기를 4:5에서 표현합니다. 여호와의 언약궤가 들어 올 때에 온 이스라엘이 큰 소리로 외치매 땅이 울릴 정도 였습니다. 계속해서 6절을 보면 이 소리를 들은 블레셋 사람들이 궁금해합니다. 이게 무슨 소리지? 그래서 알아본 결과 여호와의 궤가 이스라엘 진에 들어온 것을 알고 깜짝 놀랍니다. 7절과 8절을 보면 아이고 우리 이제 망했다고 합니다. 그런 표현이 재미 있습니다. ‘두려워하여, 화로다, 전일에는 이런 일이 없었도다.’ 그 중에서도 7절에 법궤가 온 것을 신이 왔다고 표현합니다. 8절에서 누가 이 능한 신들의 손에서 건지리요. 그들은 광야에서 여러 가지 재앙으로 애굽인들을 친 신들이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심지어 이방인마저도 소문을 들어 잘 알고 있는 신입니다. 바로 이집트의 신들에게 재앙을 내린 신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전쟁의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스라엘이 졌습니다. 심지어 법궤를 블레셋 사람이 가져갔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벱궤가 앞서면 요단강도 갈라지고 여리고성도 무너졌는데 왜 이 번에는 법궤가 있었음에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까요? 이유가 뭘까요? 홉니와 비느하스때문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 본문의 내용이 잘 이해가 안되면 어떻게 하라? 전후 문맥을 읽어라. 그렇다면 전후 문맥은? 지금 제사장 엘리 가문에게 저주가 내리는 장면이 4장 바로 전이고 4장 후반까지 계속이어집니다. 문맥이 바로 홉니와 비느하스입니다. 4:11 하나님의 법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더라. 4:4,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언약궤와 함께 거기 있었더라. 그렇다면 여호와의 언약궤 (법궤)가 능력을 상실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벱궤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것을 설명하는 일이 바로 사무엘상 5장 6장에서 길게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블레셋 신이름이 다곤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벱궤를 블레셋 신 다곤의 신전에 놓아두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요? 다음 날 아침에 보니 블레셋 신 다곤 상이 벱궤 앞에 엎드려져 얼굴을 땅에 닿아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일으켜 세워 놓았습니다. 다음날 보니 이번에는 얼굴이 땅에 닿고 머리와 두 손목이 끊어져 문지방에 있고 블레셋 산 다곤의 몸뚱아리만 있습니다. 이런 일만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다곤 신상이 있던 아스돗이란 지역에 독종의 재앙이 일어나 그 지역이 망합니다. 아스돗사람들이 여호와의 신이 다곤 신을 치고 있으니 법궤를 옮깁니다. 그 장소가 가드라는 곳입니다. 그러자 그곳에서도 독종이 발생하여 다시 법궤를 에그론이란 장소로 보냅니다. 그러자 에그론 사람들이 부르짖으며 말합니다. 그들이 이스라엘 신의 궤를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와 우리 백성을 죽이려 한다고 소리칩니다. 결국 할 수 없이 다시 이스라엘로 보내기로 결정합니다. 보낼 때 속건제로 금독종 다섯과 금쥐 다섯을 만들어 이스라엘 벧세메스로 보냅니다. 그리고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궤 안을 본 죄로 많은 사람이 죽는 일이 발생한 후 법궤를 기럇여아림으로 보냅니다. 이 이야기 속에서 주목할 것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법궤는 그 자체로만으로도 능력을 발휘하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백성들이 실로에 있던 법궤를 전쟁터로 가져온 것입니다. 그런데 그 법궤가 이번에는 그 능력이 발휘되지 않았습니다. 벱궤는 하나님의 임재이며 그 자체가 능력인데 그래서 다곤신상 앞에서 그리고 블레셋사람들이 사는 장소에서는 능력이 발휘되었는데 바로전 블레셋과의 전쟁에서는 그 법궤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았음에 주목해야 합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 이유는 제사장인 홉니와 비느하스의 범죄로 인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사사기와 사무엘서를 읽다보면 계속해서 이스라엘의 죄와 타락을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출애굽1세대도 광야에서 모두 죽고 거나안정복전쟁에 참가한 세대도 죽고 이제 새로운 세대가 등장했지만 그들은 더욱 타락한 세대였습니다. 혼합주의와 변질된 신앙을 물론 베냐민 지파와의 내전을 일으킨 레위첩 이야기는 죄의 정도가 너무 지나친 것이었습니다. 사무엘서 저자가 이 상황에 독자들을 주목시키는 이유는 다시 한번 인간은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존재임을 부각시키는 것입니다. 이런 죄의 문제와 연결된 것이 법궤를 빼앗긴 이야기입니다. 서로 상관관계입니다. 이와 연관하여 성경의 흐름 안에서도 변화가 있었던 것입니다. 법궤 그 자체로만으로도 능력이 나타나던 흐름에 변화가 생겨 이제는 나타날 때도 나타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 시기가 가나안 입성후 여호수아가 마지막 설교를 한 후 사사기가 시작되면서 특히 사사기 2장 10절에 새로운 이스라엘 세대가 등장하면서입니다. 이미 아는바와 같이 가나안 땅에서 태어난 새로운 세대가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모세와 여호수아의 설교말씀대로 살지못해 가나안 땅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지 못했습니다. 이 맥락은 아담과 하와의 에덴동산의 상황과 같습니다. 에덴동산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어야 했는데 실패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인간 왕을 달라고 한 것입니다. 사사기와 사무엘서에서 특히, 사무엘이 첫 번째 이스라엘 왕 사울을 세울 때를 중심으로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위해 친히 전쟁에 직접 개입하시는 여호와의 전쟁 이야기가 점점 희미해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왕으로 계시던 시대와 인간왕이 이스라엘을 다스리기 시작하는 시대의 차이점에 사무엘서 저자는 우리가 이것에 주목 하길 원합니다.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성막과 법궤 그 자체만으로도 능력을 발휘하는 시대와 여호와의 성전이 당시 구약성경을 읽고 있는 독자들에게 더 이상 출애굽시대와 같이 여호와의 영광이 직접 나타나지 않는 시대를 구별할 수 있습니다. 그 것은 예수님 시대의 성전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는 제사장 임명이 로마권력자들과의 정치적 결탁으로 그리고 금권으로 이루어지던 시대입니다. 바로 홉니와 비느하스 제사장 시대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그래서 홉니와 비느하스는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법궤를 앞세우고 나갔지만 법궤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았던 것처럼 헤롯성전에는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이 나타나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성경본문을 자세히 보면 성전은 출애굽때 시내산 율법을 받고 만든 시내산 성막과 같은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이있는 곳에서 서서히 기도하는 곳이란 표현으로 전환됩니다. 분명 1) 출애굽시대의 성막과 그 이후 2) 솔로몬 성전 전후시대와 3) 스룹바벨이 재건한 성전과 4) 헤롯성전시대의 차이점에 주목하자는 것입니다. 출애굽시대의 성막과 헤롯성전은 차이점이 있습니다. 같은 기능을 맡고 있지만 한 쪽은 그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제 정리하자면 하나님께서 직접 행동하셨던 여호와의 전쟁 즉 신들의 전쟁이 일어났던 시대에서 인간왕들의 전쟁이 일어나는 시대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이런 흐름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곳이 사무엘서입니다 타락한 이스라엘백성들이 왕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인간왕을 달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경고의 말씀과 함께 허락하시고 사무엘은 사울을 왕으로 세웁니다. 하지만 사울은 실패합니다. 사울의 실패는 이스라엘이 인간이 다스리는 왕을 달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을 보여주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하나님이 왕으로 계시던 시대는 저물어 가고 인간왕의 시대에 진입하면서 점점 여호와의 전쟁이야기는 즉 신들의 전쟁 이야기는 흐미해집니다. 그리고 이런 조짐은 사사기 때부터 조금씩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직접 구원행동과 동시에 삼손과 같이 개인의 인간적인 능력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해내는 이야기가 섞여서 나타나다가 인간이 왕으로 다스리는 시대를 즈음으로 성경이야기는 점점 인간왕들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이제 사무엘의 중요한 역할이 더 있습니다. 바로 다윗을 왕으로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의 기도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다윗을 통해 하나님께서 특별한 계획을 가지고 계심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음 주 사무엘서 세 번째 설교에서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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